본문 바로가기

생각

균형이 있다는 것

스스로에게 혹독한 ENTJ는 여유로운 스스로의 모습에 관대하지 못하다. 나또한 매일 아침 11시에 일어나고 새벽 3시에 잠드는 스스로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이건 근데 진짜 한심한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이 항상 나 바쁜 것 같다고 하면, 정규학기도 아니고 취업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일주일에 고정적으로 18시간 내외의 시간을 쓰거나, 혹은 40시간 정도 근무를 해야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지?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보다 한참 여유로우면서 책 한 권도 제대로 못읽는지 늘 스스로를 자책했었다. 

 

늘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었고, 자기 계발이라는 것은 멈추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했고, 꼭 뭐라도 해야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격증이라는 핑계 삼아 공부라도 했었던 것 같다. 토익도, 흐스크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그리고 위와 같은 나의 생각은 아직 변함 없지만 무튼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가족 구성원이 나의 연락 부재로 인해 서운함을 느꼈을 때에 찾아왔다. 전화 한 통 없냐는 말에 '아니 난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데??'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고(물론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절대로) 가족들은 나름대로 '전화 한 통 할 시간이 왜 없지?'라고 밖에 말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 생신도 모르고 흘려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순간 스스로가 너무나도 쓰레기 같다고 느끼며 자존감의 바닥을 쳤고, 내 삶을 스스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바쁜 삶을 살고 있는가? 조금 정량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내가 평소하는 일을 써보자면, 

매일 2시간 중국어 공부, 2시간 과외 수업 주 6회, 1시간 30분 과외 수업 주 2회 ... 

이것이 나의 정해진 루틴이다. 

그런데 저것을 학점으로 환산해보면, 2*7 + 2*6 + 1.5*2 = 29(학점)

 

물론, 학점의 빡셈(?)이라는 정도는 수업 외에 과제를 하는 시간도 포함하는 것이겠지만, 나 역시도 저 과외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도 있을테고, 무엇보다도 왕복 2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을 생각했을 때 그냥 나는 29학점을 수강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동시간까지 포함하면 나 41시간 정도를 일주일에 고정적으로 쓴다, 나 거의 직장인인 것 맞다)

 

'아, 객관적으로 내가 바쁜 삶을 살고 있구나'를 느낀 순간 스스로가 참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균형을 맞추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도 밀려왔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었구나, 수고했어'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렇지만 일에 너무 삶을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가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심한 루틴을 고쳐보고자 미라클 모닝 비슷한 것을 시도한 스스로가 대견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의지 박약과 시간 관리 소홀로만 여겼던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나 되게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너무 혹독해서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어제는 금융치료(?)와 함께 정오까지의 늦잠을 선물했다) 또, 나의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내가 챙기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졌다.

 

균형잡힌 삶이란 참 어렵다. 나 하나의 균형을 맞추기도 이렇게 힘든데, 전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얼마나 힘들지 참 상상도 가지 않는다. 나의 건강과 일이라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운동도 꾸준히 하고 공부도 하고 일도 했는데, 이제는 '관계'라는 것 역시 균형의 축에 들어왔음을, 그리고 대체적으로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앞으로 또 나의 삶의 균형의 요소에 무엇이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마다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도 늦추기  (2) 2021.11.01
K-콘텐츠와 저작권에 대하여  (2) 2021.10.16
직접 그린 풍수그림  (0) 2021.10.10
미라클 모닝 비슷한 것(?)을 해본 결과  (0) 2021.10.07
HSK 준비  (0)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