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동아시아사 집필기 Part. 5
책을 판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짧은 지식으로 책을 쓰고 그것을 돈받고 팔았다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물론 자기 실력에 확신이 있어서 책을 쓰는 사람은 드물거나 / 전공 지식이 빵빵하거나 / 아니면 자기 최면을 잘하는 사람 셋 중에 한 부류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것이겠지만, 나는 당시에 자기 최면을 잘했던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돈 아까워서 택시도 안타는데 누군가 내 책에 15,000원 가량을 쓴다고 생각하니 어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그 책에 대해서 일말의 부끄러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동양사 지식은 고등학교 동아시아사에서 그쳤을 것이지만, 쓰면서, 책을 팔면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전공 공부도 더 열심히 참여한 것이 아닐까?
위에 쓴 것처럼 내가 쓴 책을 판다는 것은 속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쓴 책이 잘 팔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딱히 내 책에 완벽한 자신감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자본주의의 시장 참여자로서(노예로서) 내가 투입한 노력에 걸맞는 성공을 거두고 싶은 것이다. 물론 노력을 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을 많이 했으니 좋은 결과를 얻었겠지, 그리고 좋은 결과를 얻으면 잘 팔리겠지 or 잘 팔렸음 좋겠다!고 하는 놀라운 논리적 비약이 탄생했다!
책을 런칭하자마자 출판사 측에서는 판매량을 트래킹 할 수 있는 링크를 주었는데, 정말 초기에는 매일 열번씩은 확인했다. 첫 구매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모두 나와 함께해주신 은사님이셨는데 너무 고마우면서도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이 역사 선생님이셨는데 오류 발견하실까봐... 출판 전에 오류를 잡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겠지만, 출판된 책에 오류가 있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다행히 이것은 김칫국에 불과해서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지만.
또 어느 선생님께선 출판에 관해서 지식이 해박하신 분이었는데, 이제 등단(?)한 것이라고 까지 말씀해주셔서 머쓱했다. 인세로 불로소득을 실천하라며 말씀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인세율도 그렇게 높지 않고 한 시즌하고 끝내버려서 안타깝게도 그 꿈은 달성하지 못했다. (인세로 불로소득을 실천하려면 정말로 유명한 작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책도 잘팔리고 인세율도 높을 것이고...)
이 책을 팔면서 경제적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고 / 내 인지도도 올리지는 못했지만 분명 배운 것은 많았다. 애초에 그냥 목표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위의 두 가지는 표면적 목표에 불과했을 것이다. 당연히 책을 많이 팔아서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당연히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책으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다(내가 유명한 스타 강사가 아닌 이상). 또 인지도 역시도 올라가기를 바라고, 누가 길가다가 나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했으면 좋겠지만, 이 역시 동아시아사 모의고사를 팔아서는 실천할 수 없는 목표이다. 그래서 위의 두 가지가 분명 표면적 목표이긴 하지만, 속으로는 이것이 참 목표가 아님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에는 '나 이만큼 잘 알아!'를 남들에게 증명 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는 것인 것 같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고3들은 그 밑 학년 친구들에게 인생 조언을 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 잘 알아! 그니까 니들도 배워!라고 하는 다소 오만한 욕구를 채워줄 수단이었던 것 같다. 참 의도가 오만방자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의도보다는 과정과 결과가 아닐까 한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았을 때 의도가 오만하다는 것도 알겠고, 나의 지식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겠다. 또,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팀원들을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책이 막!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책을 사서 푼 사람들은 만족감을 드러냈으니 결과도 좋은 것 아닐까?
한 마디로 말하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이다. 어떠한 표면적 목표(이기는 것)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배웠고, 또 남들을 행복하게 했다면 만족한다. 그래서 책을 판 것은 아직도 부끄럽지만, 어디 가서 이 경험을 말하고 다닐 수는 있을 것 같다. 또, 이렇게 책을 판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책을 쓰는 경험은 정말 거의 누구도 하지 않을 경험이기 때문에. 가끔 나는 죽을 때 풀 수 있는 썰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재미있는 스토리의 한 소재가 될 것 같아서 기쁘다.
오호 동아시아사 집필기는 이렇게 참회와 겸손과 배움으로 마친다. 일주일 안에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있는 시간을 찾아다니며 집필을 하다보니 이렇게 두 달 정도 만에 완료하는 결과가 나왔다. 다음 글감은 '인권 연구 논문 집필기'인데 이제는 회의록과 대화록을 읽어보며 자료 수집을 먼저 하고 글을 써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그 글은 한 달 안에는 마칠 수 있도록 다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