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동아시아사 집필기

오호 동아시아사 집필기 Part.3

dongohdongoh 2021. 11. 13. 12:02

모의고사 집필하기

생각보다 모의고사 집필할 때에는 고려할 것이 많다. 물론 문제들을 내놓고 배치할 때에는 뭔가 더 많지만...

 

우선 집필진이었던 나와 정양, 이군이 매주 n문제씩 출제하기로 결정했고, 일주일에 1회 회의를 통해서 문제의 오류를 검토하고 수정, 혹은 폐기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예술팀(?)에게 이 문제에 쓰일 일러스트를 요구하거나, 더 좋은 사료를 찾아오거나 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문제를 집필할 때에는 생각보다 창의력이 요구되었다. 어떤 토픽을 가지고, 어떤 형식의 문제를, 어떤 난이도로 낼 것인가?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사료나 관련 자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크다.

 

이때 한 부분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수의 문제를 내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이 몇단원의 어느 부분에서 문제를 내는지 엑셀로 정리해가며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물론 우리 팀은 이때 너무 체계가 없던 나머지, 한 120문제 정도 낸 시점에서 모자란 부분을 더 채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아니면 더욱 계획적으로는, 출제기간이 약 5주 정도 있으면 각 주마다 같은 단원에서 문제를 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아무튼 출제자가 3명인 점, 그리고 함께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 출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리 어느 부분의 문제를 출제할 것인지 서로 파악하게 한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막상 문제를 집필하려 하면 어느 부분에서 문제를 낼 지 바로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자료나 사료가 있으면 일단 아카이빙하고 시작했다. 사료는 과거 신문에 나왔던 기사를 인용하기도 했고, 그 유명한 "사료로 보는 동아시아사" 나 "아틀라스 중국사" 책을 참 많이 참고했다. 기존에 기출문제에서 나왔던 사료들은 사설 모의고사를 푸는 친구들이라면 이미 한번쯤 접했을 사료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사설 모의고사의 본질은 '이것까지 낸다고?'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아주 생소한 사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키워드 역시 잘 파악하지 못하도록 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완전히 핀트가 엇나간 것은 나, 정양, 이군의 3자 회의에서 다 걸러진다)

 

잠깐 이 3자 회의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솔직히 분위기가 살벌했다. 물론 나는 이 분위기의 책임이 상당 부분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니까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그런 도의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내가 분위기를 흐리면서까지 상대방의 과오를 지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로 반성하고 있다. 다른 회의에서는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물론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싶을 때에는, 이후에는 '비판'을 하기보다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런 의문점이 드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보통 질문의 핀트를 전혀 잡지 못한다는 점을 알았다.) 아무튼, '시험'을 다루어야 하는 수험서라면 정확도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문제가 해석될 여지가 있거나, 사실 관계가 아예 틀린 문제라면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 부분에 대해서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고3때 내가 다른 교재의 오류를 대했던 태도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 번의 교차 검토를 거친 후에는 이제 일러스트를 부탁하는 시점이 오는데, 오르비에서는 그림을 그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우리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 고맙게도 내 친구 두 명은 아이패드로 뚝딱뚝딱 그림을 잘 그려내는 친구들이었고, 이들은 일러스트 및 지도그리기 팀으로 합류했다. 놀랍게도 이 친구들도 갈수록 일러스트랑 지도를 더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 (역시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

 

무언가를 처음 '집필'해 보았는데, 생각보다도 창의력이 너무나 많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의 저작권 의식이 상당히 많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창작물은 누군가의 노력이 낳은 결과이니 절대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나의 얄팍한 전공 지식(?)으로 무언가를 집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는지?하며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다. 사실 전공 지식이랄 것도 없었던 것이, 대학교 1학년 과정의 학부생한테 무슨 전공 지식이 있겠는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동아시아사 과목에 애정을 갖고 공부한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뿐인데, 겨우 한 학년 아래인 친구들에게 '출제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조금 오만한 생각인 것만 같았다. 다만 나에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의 오만함을 깨닫게 하면서 나의 실력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해진 것 같고, 또 위와 같은 회의를 몇 달 동안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름 추진력 있게 해 본 큰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 검토하기

'실전모의고사'는 분명 '수험서'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될 것이다. 수험서의 핵심은 무엇일까?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쉽게 전달하는 것?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친절한 책을 쓰는 것은 '좋은 책'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신경써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쁜 책'이 되지 않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나쁜 책'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류'이다.

 

특히 그것이 수험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수험서를 보는 이유는 '시험을 더 잘 보기 위해서', 그러니까 '틀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누군가 우리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 내용이 오류였고, 마침 그 시험에서 관련된 문제가 나와 정답을 맞추지 못했다면? 더욱 심각한 경우, 그 사람의 당락을 결정했다면?

 

나는 악의를 품지 않고 '실수'를 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위와 같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수험서를 집필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류를 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실수를 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고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개인적인 '소양'으로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다. 그래서 실수를 고치려고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 팀의 경우에는 문제 출제를 완료한 후에 검토 및 수정하는 과정을 약 7번 정도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는 항상 발생하지만.) 검토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문제 출제 후 교차 검토
  2. 교차 검토 피드백 반영
  3. 전체 문제 출제 완료 후 교차 검토
  4. 교차 검토 피드백 반영
  5. 외부 검수자 검토
  6. 외부 검토 피드백 반영
  7. 최종 검토

사실 7번이라고 했지만, 더 많이 한다. 1-2번/3-4번/5-6번 과정이 딱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토자와 출제자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검토자가 출제자를 갈구면서) 수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생각하기에 아쉬웠던 점은 오탈자 검토 과정을 따로 넣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같이 수정하다보니 한 곳에 포커스를 맞출 수 없고, 결국은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가 반 마리(?) 정도의 토끼만 잡은 것 같다. 물론 최종 완성본을 보고 나니 오류가 남발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완벽한 수험서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다.

 

검토 과정에서 동아시아사를 다시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팩트들이 가끔 어떤 책을 보면 부정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아시아사 내용에서는 흐지부지 넘어가는 내용들이 알고보면 오류였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실제 역사의 사실을 담되, 동아시아사라는 교과의 범위 내에서 문제를 출제하려다 보니 많은 고민이 있었다. 또 문제가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경우, 답이 '없거나' 아니면 '두 개 이상'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팩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레퍼런스들을 참고하면서 무엇이 역사적 진실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주력했다. 아무리 교과 과정에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출제자는 정확한 팩트를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문제에 표시할 때에는 그 문장을 교과서의 언어로 표현하려 했다. 최대한 수험생들이 '한 번 봤던' 용어에서 내는 것이 수학능력시험의 취지에 맞는 것이기도 하고, 혹여나 나중에 우리 시험지를 보며 복습할 때에 자신이 몰랐던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가며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의도가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파악될 가능성은 우리 스스로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출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사 기응시자 중에서 검토진을 따로 모집해서 파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활용했던 방법은 모든 것에 질문하기였다. '이거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의도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솔직히 억지스러운 의문들도 참 많았는데, 그러한 의문들은 같은 출제진에 의해서 cut 당했고, 출제진 모두가 걱정될 정도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은 문제를 교체해버리거나 아니면 문구를 바꾸었다. (문구를 바꾼 이유는, 우리가 문제 난이도를 어렵게 하기 위해서 말을 어렵게 하다보니 생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